다큐영화 <추방>: 창조론자들의 반격? 적반하장도 유분수 종교비평

기독교 창조론자들의 낡은 사이비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으로 미국과 우리나라 개신교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ng) 이론. 물론 과학계에선 이것도 여전히 과학의 대열이 낄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어쨌든 지적 설계 이론은 개신교계에서는 분명 크게 성공을 거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특히 "교실에서 토론을 가르치라"는 명목 아래 진화론과 창조론을 맞짱뜨게 하는 것이 정당한 토론거리라고 주장한다. 개신교계에선 제법 먹혀드는 전략이다. 그런데도 과학계는 여전히 시큰둥했다. 응대할 가치조차 없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계의 무관심 덕택에 그 동안 지적 설계 이론 진영을 중심으로 한 창조론 진영은 엄청나게 저변을 확대했고, 비록 교실로 진입하는 데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지만 언뜻 보기엔 진입 일보 직전처럼 보일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이제 다급해진 것은 진화론자들이었다. 이제 그들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마침내 도킨스라는 전사가 총대를 메고 나서서 무신론적 진화론을 개인적 신조를 넘어서는 하나의 지구적 무브먼트로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적 설계 이론은 물론 나아가 기독교와 모든 종교 자체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 반격은 어느정도 성공했다. 그의 책은 세계적으로 수십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이름값과 대형출판사의 파워에 힘입어 놀라운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이에 맞서 다시 지적 설계 이론을 중심으로 한 창조론 진영의 반격이 개시되었다. 내년 2월에 개봉할 벤 스타인(Ben Stein) 감독의 <추방: 지성이 허락되지 않다>(Expelled: No Intelligence Allowed)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바로 그 한 사례다. 중립적으로 양측 입장을 조망한다더니, 도킨스를 비롯한 숱한 과학자들의 말을 맥락없이 자기들 맘대로 오용했다는 점 때문에, 또 그 과학자들을 오만에 사로잡힌 권력 집단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영화가 도킨스나 여타 과학자들의 불만을 사고있다는 점이 뉴스거리가 되고 있는 중이다. 자세한 것은 영화가 개봉되어봐야 알겠지만, 글쎄... 대충 어떤 내용일지 짐작은 간다. 지적 설계 이론의 타당성을 주장하면서, 이 타당한 이론을 교실에서 가르쳐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는 과학자들은 명백한 잘못을 범하는 거라고 질타하는 내용이겠지...
하지만 그들은 왜 역사를 애써 무시할까? 20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정작 진화론이야말로 교실 밖으로 오랫동안 추방당해 있었다는 사실을? 거의 모든 주의 법률이 교실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진화론이 우주와 생명 그리고 인간의 출현과 전개에 관한 과학적이고 정확한 이론이자 '사실'로 자리잡게 된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벤 스타인이나 그 주변의 지적 설계 이론 추종자들은 이러한 과거에 대해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둘 중 하나가 아닐까. 과거를 전혀 모르거나, 또는 돌아가야 할 그리운 황금시대로 여길지도...
그런데 왠지 이런 생각이 든다. 좀 과장되고 뜽금없는 것 같지만, 이를테면 이런 생각이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양성평등도 하나의 주장이고, 남성우월도 하나의 주장이다. 이 둘을 동등하게 취급해달라. 둘을 교실에서 똑같이 가르쳐서 학생들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게 하라!" 누군가가 이런 궤변을 들고 나온다고 생각해보시라. 어떤가? 똑같지 않을가? 지적 설계 이론을 내세우며 "교실에서 토론을 가르치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들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사실 젠더 문제에 관한한 적어도 원칙적으로 승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세부적인 데서 현실적 문제들이 여전히 쌓여있고, 또 일부 중산층 페미니스트들이나 극렬 페미니스트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치우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양성평등의 원칙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건 이미 검증된 진리다. 창조와 진화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진화는 관념적 이론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증거를 지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반대자들은 여전히 진화란 하나의 가설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어차피 모든 게 다 가설이고 이론이니, 여러 개를 동시에 같이 좀 가르치자고 주장한다. 참으로 절묘한 논법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는 오직 '그들'에게만 통할 뿐이다.
<추방>이 개봉되면 도킨스와 과학계가 가만히 있을 것 같지만은 않다. 기왕 칼을 뽑고 나섰으니 휘둘러야지. 아마도 내 생각에는 이 영화 개봉 전에 좀더 적극적인 대응이 불거질 듯하다. 음... 그러고보니 창조론자들은 책뿐 아니라 비됴도 숱하게 제작해왔는데, 아마 이번 이 다큐영화를 계기로 도킨스와 과학계에서도 계몽 용 영화나 동영상을 제작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이는 분명 이루어져야만 할 일 같다. 창조론자들이 교실로 진입하려 그토록 애쓰고 있고, 영화까지 제작해가면서 이를 위해 더 분투하고 있다면, 이미 교실을 차지하고 있는 진화론자들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닐까? 책과 논쟁으로만이 아니라, 역시 마찬가지로 영화 같은 거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제작비나 기간도 그리 많이 들지 않을텐데... 이미 책도 숱하게 나와있고.... 창조론자들이 증거를 얼마나 억지로 끼워맞추는지에 대해 한 10부짜리 다큐영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지적 설계 이론이 유행하고 <추방> 같은 진화론 반대 영화가 생겨나는 작금의 현실은 자꾸만 나에게 중립을 포기하라고 강요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양성평등과 남성우월 사이에 중립은 없다. 마찬가지로 창조와 진화 사이에 중립은 없다. 그럭저럭 이해는 할만한 종교인들, 이를테면 존 호트처럼 진화론적 유신론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도 중립은 아니다. 그들은 명백히 진화에 99.9% 손을 들어준다. 다만 그 나머지 0.1%에서 신이 개입할 조심스레 남겨놓을 뿐이다. 그렇기에 존 호트 같은 진화론적 유신론자들은 정당하게 과학자들과 대화하고 토론을 나눌 자격을 얻는다. 진화론적 유신론자들은 0.1%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역시 철저한 진화론자들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라고 다 같은 기독교가 아니다.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토대로 신학의 판을 새로 짜고 신앙의 틀을 새로 짜는 기독교인도 얼마든지 있다. 아니 사실 미국과 한국의 보수 개신교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는 이런 기독교인들이 훨씬 더 많다.
적은 가장 가까운 데 있다는 걸 창조론자들은 채 모르는 걸까? 그들은 그들의 적이 정작 도킨스가 아니라는 걸 모를까? 그들의 진정한 적은 무신론자들이 아니라, 같은 유신론자이면서 진화를 인정하는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이다. 실상은 이렇다. 도킨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 때문에 신앙을 버리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다. 이게 바로 신앙의 엔진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진화론적 유신론을 추구하는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같은 기독교 진영 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옮기게 만든다. 문자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에서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인 입장의 기독교로 말이다. 그러니, 창조론자들이여! 정말 싸우고 싶다면, 문자주의를 진리라 주장하고 보수적 신앙을 절대적인 것으로 고집하고 싶다면, 도킨스랑 싸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 호트 같은 진화론적 신학자와 싸우시기를! 단, 진화론적 유신론자들이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은 명심하시기를! 그리고 설령 패배하게 되더라도 이를 거부하지 말고 당당히 그 패배를 받아들이시기를!
참고자료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이한음 옮김, 김영사, 2007년 (God Delusion, 2006)
장대익, <과학과 종교 논의의 최근 동향>, <<한신대 학술원 제2회 심포지엄 자료집>>, 2007년 11월 7일. (지적 설계 이론이 출현하게 된 정치적 배경 분석 및 비판, 이에 대응하는 도킨스 등의 반격과 무신론 운동의 의의, 종교에 관한 진화심리학적 연구 소개 등)
존 호트, <<다윈 안의 신: 진화론 시대의 종교>>, 김윤성 옮김, 지식의숲, 2005 (Deeper than Darwin, 2004) (진화론적 유신론 진영에 속하는 대표적인 가톨릭 신학자. 창조과학이나 지적 설계 이론의 문제점 비판. 또 도킨스의 무신론이 지닌 과도함도 비판. 이 양 극단을 넘어서는 대화와 공존의 가능성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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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사람 2015/12/16 00:59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글 내용을 잘 읽어 보았습니다.
    글 내용 중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글을 올려봅니다. 위에 글을 보면 지적 설계론과 진화론을 가르쳐보고 선택하라는 것에 대한 예시로 양성평등과 남성우월을 두 가지 모두 경험해보고 선택하라는 것으로 들어 주셨는데 제 생각에는 예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양성평등과 남성우월을 비교하는 문제는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이고, 지적 설계론과 진화론의 경우는 두가지 상반이 되는 "이론"을 들어보고 어느 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한 것인가에 대해 학생들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이쌍스 2016/01/15 23:19 #

    우선, 젠더에 관련된 도덕적 문제와 자연/과학에 관련된 지식적(이론적) 문제를 비교한 게 잘못되었다는 지적 감사합니다. 맞는 말씀이고요.
    그런데, 저는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을 "두 가지 이론"으로 보지 않습니다. 저뿐이 아니라, 절대다수의 과학자들, 지식인들, 그리고 상당수의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진화론은 진화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하나의 과학적 "이론"이지만, 지적설계론은 진화라는 사실은 물론 정상적인 과학적 방법 자체도 부정합니다. 지적설계론은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 "신앙"일 뿐이지요.
    학생들에게 두 입장을 비교해보고 판단하게 하는 일은, 교회나 서클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공교육 시스템 안에 있는 학교의 학과수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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