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호러물, 씁쓸한 자화상 - <나는 전설이다>를 보고

하드코어한 호러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독특한 영화취향의 나이기에 좀비영화는 안 본 게 거의 없다.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을 비롯한 '시체들...' 시리즈, 이를 리메이크한 <새벽의 저주>, 그리고 이 둘을 다시 엽기 블랙 코미디로 패러디한 <새벽의 황당한 저주>, <좀비오> 시리즈, <바탈리언> 시리즈... 정통 B급 좀비 영화는 물론 허접쓰레기 같은 D급 좀비영화까지 안 본 게 거의 없을 것 같다.... ㅛ^^; 이러한 좀비물 시리즈들 속에서 좀비들의 진화는 실로 놀랍다. 요즘 좀비들은 그냥 어기적거리며 걷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보다 더 빠르고, 나름대로 사고능력도 갖추고 있다.
엄청난 연기변신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를 보았다. 네빌 박사와 '그들'의 대결. 바이러스에 의해 변종인간이 된 그들은 매우 복합적인 존재다. 물리면 감염되고, 죽었다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무리지어 행동한다는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좀비의 연장선상에 있다. 또 햇볕을 싫어한다는 점에서는 드랴큘라의 먼 친척이기도 하다. 그들은 인간보다 빠르고 강하며, 나름대로 생각도 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새로운 몬스터를 창출한 <나는 전설이다>는 그야말로 몬스터 호러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탄을 보내고 싶은 영화다.
인간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텅빈 대도시의 폐허, 생존자를 찾아 허공으로 쏘아보내지는 무선 메시지, 음반몰에 세워놓은 마네킹들에게 건네는 혼자만의 대화, 유일한 말벗이자 친구인 개 샘의 죽음 (결국 샘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 ... 후반에 생존자들이 합류하기 전까지, 유일한 생존자 네빌 박사의 고독은 보는 이의 심장을 파고들 정도로 처절하다. 변종인간들과의 싸움은 극도의 긴장감이 넘치고, 구석에 몰린 생존자들과 그들을 향해 쇄도하듯 몰아쳐 들이치는 변종인간 떼거리의 대결은 몬스터 영화사상 길이 남을 명장면이 아닐까 싶다.
네빌의 고독이 내 고독이 되고, 친구인 개 샘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몬스터들 때문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극한 상황 속의 서스펜스는 극에 달하고, 마지막 결말에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행복한 눈물을 짓게 만드는, <나는 전설이다>는 그야말로 몬스터 호러영화의 절정판일 듯싶다. 별점 다섯개 서슴없이 주련다. (스포일러 없이 글쓰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자꾸만 드는 생각... 로메로가 좀비영화 장르를 열면서 매카시 선풍에 놀아나던 미국인들을 무뇌적 좀비로 형상화했듯이, <나는 전설이다>를 보면서 왠지 우리네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지금 우리네 모습이야말로 무뇌적 좀비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닌가! 도덕성이 어떻든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근시안적 선택, 그 후보가 실제로 결제를 살릴 능력마저 없다는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 의도적 회피... 한 언론에 인터뷰를 했던 한 평범한 소시민의 말처럼 "그저 등 따습고 배 부르면 된다"는 생각으로 족하는, 2007년 겨울 대선이 끝난 우리네 모습은 그야말로 생존 본능밖에는 남아있지 않은 좀비의 모습 아닐까! 참으로 씁쓸하다...

by 제이쌍스 | 2007/12/21 15:09 | 영화 얘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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