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종교문화탐방(2-1): 센트럴시너고그 칸토르-랍비 안젤라 부흐달과의 대화 (개혁유대교) 종교비평

뉴욕 종교문화 탐방 두 번째... 2013년 11월 1일(금). 맨해튼의 대표적인 개혁유대교 회당인 센트럴시너고그(Central Synagogue)를 방문하여, 한국계-미국인 칸토르 겸 랍비 안젤라 부흐달(Angela Warnick Buchdhal)과 대화를 나누고,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다. 먼저, 칸토르-랍비 부흐달과의 대화록 정리부터... (안식일 예배 참관기는 이 문구를 클릭~!)


뉴욕 개혁유대교 여성 칸토르-겸-랍비 안제라 부흐달과의 대화
(이 대화록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뉴스레터에 게재될 예정이다. http://kirc.or.kr)

뉴욕은 학술과 문화예술 못지않게 종교의 다양성도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풍부한 곳이다. 지난 2월, 1년 방문객으로 맨해튼에 정착한 뒤로 종교와 관련해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내가 그 동안 종교현장과 종교인들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던가 하는 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지난 4월 유니온신학교에서 열린 ‘참여불교-해방신학 대화 학술대회’ 때 세계 각지에서 온 불교와 그리스도교 성직자들, 학자들, 활동가들, 특히 오랫동안 사회적 참여와 실천을 모색해온 분들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1세대 민중신학자 중 한 사람인 김용복 선생님, 한국 불교계의 변화를 이끌어온 주역인 도법스님과 법륜스님 같은 한국 종교인들을 처음 만난 것은 한국이 아니라 바로 이곳, 뉴욕 유니온신학교 학술대회에서였다. 하지만 이후로도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기만 하다가, 마침 동행이 생긴 덕분에 얼마 전부터 비로소 종교탐방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성당, 교회, 시너고그, 모스크, 힌두사원, 불교사찰 등. 유서 깊은 곳부터 개성 있는 곳까지. 다양한 종교들을 찾아 이모저모 둘러보고, 전례에 참여하고, 성직자들과 신자들도 만나고 하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맨해튼 동쪽 중부 구역의 렉싱턴애비뉴와 55번가 교차로에 있는 개혁유대교의 대표적인 회당 센트럴시너고그를 방문하여,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고, 여성 칸토르-겸-랍비 안젤라 부흐달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언젠가 뉴욕 종교문화 탐방기를 써보려는 중인데, 아마도 탐방기나 다른 어떤 형태의 글로는 이런 대화를 공유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뉴스레터를 빌려 대화록을 올려본다.

안젤라 와닉 부흐달(Angela Warnick Buchdahl)은 1972년 서울에서 유대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시아계-미국인 여성으로, 예일대에서 종교학을 공부했으며, 맨해튼의 개혁유대교 신학교인 히브리유니온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999년에 칸토르 안수를, 2001년에 랍비 안수를 받았다. 현재 맨해튼의 가장 큰 개혁유대교 회당인 센트럴시너고그(Central Synagogue, 1872년 설립)에서 수석 칸토르이자 부담임 랍비로 시무하고 있다. (필자 주: 칸토르[cantor]는 히브리어로 핫찬[hazzan], 독일지역 유대인의 히브리 방언인 이디쉬어로 크잔[khzan]이라고도 하는데, 유대교의 찬양 전문 성직자를 말한다. 유대교 예배에서는 찬양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며, 칸토르는 예배 시작부터 끝까지 독창도 하고 회중 찬양을 이끌기도 하면서 예배의 전체 흐름을 주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안젤라 부흐달에게는 몇 개의 ‘최초’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그녀는 아시아계-미국인으로서 랍비 안수를 받은 세계 최초의 인물이며, 아시아계-미국인으로서 칸토르 안수를 받은 것 역시 세계 최초다. 또한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서 칸토르와 랍비 두 가지 안수를 모두 받은 것도 그녀가 세계 최초다. 덕분에 안젤라 부흐달은 미국과 세계의 유대 공동체는 물론 미국 사회 전반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어떤 언론은 그녀를 ‘현대 유대교의 새 모습’을 대표하는 인물로 집중 조명하기도 했으며, <뉴스위크>는 2012년에 그녀를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랍비 50인’ 중의 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센트럴시너고그는 안젤라 부흐달이 부임한 뒤로 지난 몇 년 간 회중의 규모가 거의 두 배로 증가하였다고 한다.

안젤라 부흐달과의 대화에는 필자와 한백교회 양미강 목사님 이렇게 두 사람이 참석했다 (필자 주: 양미강 목사님은 한신대 신학과 출신으로,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총무를 지냈으며, 기존에 이름으로만 알고 있다가 이번 학기 컬럼비아대 인권연구소 방문연구원으로 와 있게 되어서 처음 만나 많은 것을 함께 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부흐달 칸토르와의 만남을 위해 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오후 센트럴시너고그 옆 블록의 커뮤니티센터 4층에 있는 부흐달 개인 집무실을 방문하였으며, 4시 30분부터 예배 시작 30분 전까지 약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혈통의 절반이 한국계라서 더욱 그랬겠지만, 따뜻한 인상, 친근한 태도, 활달한 목소리, 그리고 성직자다운 명료한 영어발음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질문지를 미리 준비해가기는 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정돈된 인터뷰라기보다는 잡담처럼 편하고 두서없는 대화가 되었다. 아래에 정리한 문답 형식 대화록은 녹취와 메모를 토대로 대화 내용 일부를 임의로 재구성한 것이다. 정리와 번역은 김윤성이 했다.

[문] 한국인 어머니와 유대인 아버지. 사람들이 당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 흔히 가장 먼저 또 가장 자주 언급하는 사항이다. 가족 얘기, 인생 얘기를 좀 들려 달라.
[답] 친가 쪽 뿌리는 루마니아의 유대인 집안이며, 미국으로 이민을 온 것은 몇 세대 전이었다고 한다. 외조부모님은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거기서 살다가 서로 만나서 결혼하셨고, 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해방 후에 조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정착하셨다. 일본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거의 본 적이 없으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독립운동 자금과 정보를 나르는 활동을 하셨고, 이 때문에 집에 계시는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뿌리를 찾아서>라는 TV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선조 중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있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한국에서 일하시던 중 어머니를 만나셨고, 나는 5살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 그 후로 한동안은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이 더 강했고, 미국 사회에도, 유대 공동체에도 온전히 합류하지를 못했다. 10살을 지나면서 비로소 또 다른 나, 즉 유대인이자 미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문] 어머니가 불교신자이시라고 하던데.
[답] 내가 랍비가 되기로 결심한 데에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신심에게서 받은 영향이 더 컸다. 물론 나에게는 한국 문화, 유대 문화, 미국 문화, 그리고 아버지의 영향과 어머니의 영향이 두루 섞여 있지만, 종교적 측면에서는 불자이신 어머니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필자 주: 어머니가 지금도 불자이신지, 유대교로 개종하셨는지 궁금했으나, 질문할 때를 놓쳐버렸다.) 외가 쪽 친척들은 모두 개신교다.

[문] 종교가 서로 다른 일가친척이 모이면 어색하지 않은가?
[답] 사실, 외가 쪽 친척들과 만날 기회가 그리 흔치 않기 때문에 종교의 차이로 인한 어색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모는 지금도 나에게 종종 개신교로 개종하라고 말씀하시고는 한다. (모두 웃음)

[문] 왜 개혁파 유대교에 속하게 되었나?
[답] 친가 쪽이 오래 전 유럽에서부터 이미 개혁파였기 때문에, 나도 유대 공동체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 자연스레 개혁파의 일원이 되었다.

[문] 유대교 개혁파와 여타 교파들의 차이가 무엇인가?
[답] 많은 교파가 있지만, 크게 세 교파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통파(Orthodox), 보수파(Conservative), 개혁파(Reform)다. 보수파는 다른 두 교파의 중간쯤 되므로 생략하고, 정통파와 개혁파의 차이만 말하자면, 핵심은 경전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다. 정통파는 경전의 저자가 신 자신이며, 경전 내용은 하나도 빠짐없이 문자 그대로 모두 진리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개혁파는 경전이란 신의 영감을 받은 인간의 산물이며, 오랜 편집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고, 따라서 역사적 맥락에 따라 항상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통파와 개혁파의 관계는 개신교의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관계,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관게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필자 주: 여기서 경전이란 모세5경인 ‘토라[Torah]’를 말한다; 개혁파 외에 현대에 생겨난 좀 더 진보적인 유대교 교단으로 재구성파[Reconstructionist]와 인간주의파[Humanistic]가 있다.)

[문] 유대교에서 여성이나 성소수자의 처지는 어떠한가?
[답] 정통파는 여전히 여성에게 랍비 안수를 주지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랍비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더러 있고 나름대로 계속 분투해 왔지만, 아직 랍비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보수파와 개혁파는 일찌감치 여성 랍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개혁파의 경우 41년 전에 (1972년) 처음으로 여성이 랍비 안수를 받았다. (필자 주: 보수파가 여성 랍비를 허용한 것은 좀 더 훗날인 1985년의 일이다. 한편, 유럽 유대교에서 여성 안수의 역사는 좀 더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1930년대 독일에서 한 여성이 랍비로 안수를 받은 일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유대교에서 여성 랍비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다양한 새로운 사회운동들[New Social Movements]의 태동과 함께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교단이나 개인 간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유대교계 전반적으로 대체로 개방적인 편이다. 개혁파에서는 20~30년ㄴ에 일찌감치, 보수파에서는 몇 년 전에 성소수자에게도 랍비 안수를 주기 시작했다. 정통파에서는 성소수자에게 랍비 안수를 주지 않는다. (필자 주: ‘전반적’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필자는 대략 이렇게 이해했다. 정통파나 보수파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지만, 미국에서는 개혁파가 유대 공동체의 압도적 다수이기 때문에, 미국 내 유대인들 사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태도 역시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흐달과의 만남 당시에는 필자도 몰랐고, 부흐달 역시 몰랐거나 또는 얘기를 생략했던 것 같은데, 집에 와서 언론 기사를 찾아보니, 몇 달 전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미국 어떤 주의 정통파 유대교 그룹에서 커밍아웃한 게이 남성이 최초로 랍비 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 랍비는 동성 파트너와 혼인신고도 했으며, 딸도 한 명 입양하여 기르고 있다.)

[문] 여성 랍비로서 어려움은 없는가?
[답] 아무리 개혁파라고 해도, 사실 여성 랍비에게 어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 일반에서 여성들의 성취를 가로막고 있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은 유대교 전반은 물론 심지어 개혁파 안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여성 랍비들은 이를 흔히 ‘스테인드글라스 천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론상으로나 제도상으로는 여성이라고 차별을 받거나 하지는 않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유대교에는 위계적인 총회 조직 같은 게 없기 때문에 교파 내에서 여성 랍비들의 역할이 딱히 제한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성 랍비가 큰 시너고그의 담임을 맡는 일은 여전히 거의 불가능하다. 가장 큰 이유는 아직도 여성이 가정과 자녀를 돌보면서 풀타임으로 랍비 일을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여기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필자 주: 부흐달은 한 남편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다.) 나는 매우 예외적이고 운이 좋은 경우인데, 이곳 센트럴시너고그의 현 담임 랍비께서 몇 년 뒤에 은퇴하시면 내가 담임 직을 승계하기로 되어 있다. ([문] ‘최초’라는 타이틀이 이미 여럿인데, 곧 하나가 더 붙게 되겠군요. [답] 그러네요.)

[문] 뉴욕은 독신자 비중이 매우 높고, 뉴욕 유대 공동체의 경우도 그럴 것 같다. 그런데 유대교는 유교 못지않게 '가족'과 '후손'을 매우 중요시 하는 종교로 알고 있는데, 유대 공동체 안에서 독신자들의 위상은 어떠한가?
[답] 유대 공동체에서는 대개 독신자들이 편안히 있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는 교파가 보수적이냐 개방적이냐에 상관없이 마찬가지다. 많은 유대인들은 독신자들을 보면 반드시 짝을 맺어주어야 할 것 같은 측은함과 의무감을 느끼며, 그래서 결혼에 성공할 때까지 끊임없이 앞다투어 중매를 해주려 한다. 평생 반려자를 찾고 있는 독신자라면 좋은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고 독신 자체를 자기 삶의 방식으로 택한 사람이라면, 이는 매우 부담스런 일일 것이다. 작은 공동체일 수록 이런 경향이 더 심하고, 그래서 많은 독신자들이 공동체를 떠나기도 한다. 대도시들의 큰 공동체라고 해서 많이 다른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덜 하기는 한 것 같다. 독신자들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조금은 무덤덤하고, 무엇보다도 독신자들 자신이 담담하고 쿨하다. 그럼에도 역시 큰 공동체에서도 독신자들이 많이 떠난다. 독신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유대교로서는 아직 쉽지 않은 숙제인 것 같다.

[문] ‘칸토르’란 무엇이며, 예배에서 역할은 무엇인가?
[답] 유대교 예배에서는 교파를 불문하고 찬양이 매우 중요하다. 개혁파의 경우 칸토르의 역할이 특히 커서, 랍비는 강론만 하고, 예배의 시작부터 끝까지 찬양을 중심으로 예배 전체 과정을 이끄는 것은 칸토르다. (필자 주: 안젤라 부흐달과의 대화 이후 안식일 저녁예배에 참관했을 때, 실제로 강론을 맡은 랍비는 강론 때에만 전면에 나설 뿐,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명의 칸토르들이 강단에 서서 함께 그리고 돌아가며 예배를 주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통파나 보수파와 달리 개혁파에서는 현대적으로 새로이 작곡된 찬양을 사용한다. 이스라엘 특유의 가락, 그리고 이따금 들리는 ‘샬롬’, ‘아도나이’[주님], ‘할렐루야’, ‘아멘’ 같은 대목 외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디쉬어 가사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개신교의 현대기독교음악[CCM]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수석 칸토르인 안젤라 부흐달은 회중 찬양 때는 직접 기타를 들고 찬양을 인도하기도 하며, 전체적인 반주는 파이프오르간이 아닌 드럼, 전자기타, 신디사이저로 구성된 밴드가 담당한다. 그리고 대중가수의 쇼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서너 명의 백코러스가 밴드 옆에 서서 화음을 넣는다 [아래 찬양 듣기 링크 참조]. 한편, 예배 담당 외에도, 칸토르는 후속세대 교육의 주축이기도 하다.)

[문] 다른 종교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답] 우리는 맨해튼의 개신교 및 이슬람과 긴밀한 협조를 해오고 있다. 신학적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물론, 특히 홈리스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복지사업에서 함께 협력하고 있다. (필자 주: 3대 유일신교들 간의 대화와 협력 외에, 불교 등 다른 종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으나, 시간 관계상 생략함.)

[문] 오래 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선민(chosen people)’ 사상에 대해서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로부터 ‘선민’ 사상을 이어받은 뒤 이를 재해석해 스스로를 ‘새로운 선민’으로 규정했는데, 그리스도교 역사를 보면 ‘새로운 선민’이라는 자부심이 왜곡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오늘날 근본주의 개신교 진영에서는 ‘선민’ 사상을 심하게 왜곡시켜 종교적으로는 배타주의를, 민족적, 정치적으로는 쇼비니즘을 조장하고 있는 것 같다. 유대교에서는 어떤가?
[답] ‘선민’ 사상이 배타주의와 쇼비니즘으로 빠지기 십상이라는 것은 분명 사실이며, 유대교의 역사에서도 그런 오류가 많이 벌어져왔다. 하지만 개혁파는 ‘선민’ 사상을 현대적 맥락에서 새롭게 이해하려 하고 있다. 이를테면, 개혁파에서는 ‘선민’을 특권적 집단이라는 뜻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신조(creed)’가 아니라 ‘행위(deed)’다. ‘선민’은 특권보다는 의무, 세상 속에서 윤리를 실천할 의무를 지닌 존재일 뿐이다. 상처 입은 세상을 ‘회복’(redemption)시키는 게 선민의 사명이다.

[문] 민감한 정치적 질문을 하나 드렸으면 한다. 엊그제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공격했다. 중동 문제,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과 외국의 유대인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는가? 또는 교파 간에 견해 차이가 있는가?
[답] 일단 이스라엘의 유대인들과 외국의 유대인들 사이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중동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 문제로부터 거리를 두기도, 다르게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그들에겐 이것이 단순히 신념이나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유대인들은 견해가 극과 극이다. 철저하게 이스라엘 편에서만 보려는 사람도 있고,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다르게 보려는 사람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견해 차이가 교파별 차이와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생각의 차이는 교파가 아니라 개인의 판단에 따른 것일 뿐이다.  (끝)

[관련 사이트]

맨해튼 센트럴시너고그 홈페이지
안젤라 부흐달이 부르는 안식일예배 찬양 듣기 (40분)
센트럴시너고그 안식일 예배 중 안젤라 부흐달의 ‘콜 니드레(신의 날)’ 찬양 동영상 (5분)
TV 다큐멘터리 <뿌리를 찾아서> 동영상 (안젤라 부흐달 외 2명) (영어, 55분)

(photo from http://kbps.org)
(방문 기념 선물. 안제라 부흐달 칸토르가 노래한 안식일 찬양 선집 음반. 센트럴시너고그 제작.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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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6/03/23 11:2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3/23 11:2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제이쌍스 2016/04/30 22:56 # 답글

    사는 게 바빠서 블로그를 전혀 못 들여다보는데,
    (다른 흥미로운 블로그 링크 좀 해두려) 오랜만에 들렀다가 댓글을 이제야 봤습니다.

    뉴욕센트럴시너고그는 저도 딱 한번 예배 참가해보고 부흐달 랍비 인터뷰하고 그랬던 지라... 어느새 2년도 넘었고...

    어쨌든 뉴욕센트럴시너고그에서는 이랬습니다.
    - 개신교 찬양집회 비슷하다고 보면 됨. (온누리교회)
    - 예배 시작 전에 30분 가량 오직 찬양만 하는 시간이 있었음.
    - 반주가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음반에서는 밴드이지만, 예배 때는 어땠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 아무튼 안젤라 부흐달 칸토르가 기타를 메고 찬양을 이끕니다.
    - 예배 전에는 전체회중 합창 위주이고요.
    - 예배 중에도 찬양이 상닫히 많습니다. 예배 중에는 회중합창도 하다가 부흐달 혼자 독창도 하다가 그랬고요.

    음악은...
    - 정통 유대교 orthodox, 보수 유대교 conservative, 개혁 유대교 reformed... 가 스펙트럼처럼 쭉 늘어서 있을 듯...
    - 전에 유투브 찾아본 기억으론, 정통유대교의 경우 칸토르 혼자서 말도 노래도 아닌 챈팅을 중얼거리는 걸 본 적이 있고요.
    - 지금 새로 찾아보니까, 뉴욕 "보수유대교"의 예배장면이 있는데, 남자 칸토르 독창에 회중의 추임새.... 좋네요.... https://youtu.be/_e50J2VpW48
    - 이 보수유대교를 보니까, 개혁유대교라고해서 크게 다르진 않고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 같습니다.

    - 아무튼 대체로 유대교가 찬양이 정말 중요한 것 같고, 그만큼 유대음악 전통이 깊다는 얘기이겠지요.
    - 개혁유대교의 음악은 어디까지나 유대음악이고, 따라서 전통 유대음악을 세련되게 편곡한 게 아닐까 싶어요.

    - 부흐달이 작곡을 직접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칸토르는 작곡각가 아니라, 찬양과 예배인도를 하는 성직자이기에...
    - 한두 곡 작곡작품도 있을진 몰라도, 대부분은 대부분의 다른 회당들에서처럼 전통 유대찬양을 현대적으로 편곡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유대교는 저는 사실 전혀 아는 게 없고, 그냥 제 뉴욕 기억 그리고 유트브에서 찾아본 거 가지고 추측했을 뿐입니다.
    아무튼 흥미로운 공부를 하시는 데, 좋은 성과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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