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종말을 말하는가? 종교비평

<월간 사목정보> 2011년 4월호에 실은 글

사람들은 왜 종말을 말하는가?

세기말의 종말론 해프닝

새로운 세기와 천년이 시작된 지도 어느새 첫 십년이 지났다. 세기말을 잠시 들썩이게 했던 종말의 소문들. 정해진 날에 세상이 심판받고 선택된 소수만 구원받는다던 특정 종파의 종교적인 시한부 종말설에서 Y2K로 인한 컴퓨터의 마비로 세상이 패닉에 빠질 것이라던 테크놀로지 종말설까지, 대개의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었음이 금세 판명되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다. 실제인지 과장인지에 관한 시비가 있기는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한 생명체의 멸종을 우려하는 생태적 종말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 제3차 대전과 핵 겨울 시나리오를 앞세운 군사적 종말론 역시 과거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존속한다. 그러나 어쨌든, 종말론자들이 주장한 최후의 그 날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고, 테크놀로지의 혁신속도는 예상보다 빨랐다. 덕분에 우리는 지난 세기를 마치며 이러저러한 종말설들이 한낱 해프닝에 그치는 것을 목도했다.


테크놀로지 종말설은 다소 의외였을지 몰라도, 종교적 종말설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종말에 대한 기대는 세계 여러 종교에서 드물지 않은 것이고, 특히 그리스도교 2천 년 역사 내내 종말설의 해프닝이 비일비재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세기말이나 천년기말에 좀 더 도드라지기는 했지만, 그리스도교 진영의 시한부 종말설들은 이런 굵직한 시간 마디와 상관없는 제각각의 특정 시기를 종말의 때로 주장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따라서 시대의 전환점이라는 특수성이 있기는 했어도, 지난 세기말의 시한부 종말설들이 해프닝으로 끝나리라는 것은 그 신봉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익히 예견된 일이었으며, 결국 예견대로 되었고, 시나브로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런데 어딘지 이상하다. 비록 지금의 21세기가 공상과학 장르가 묘사한 미래의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와는 사뭇 다르긴 해도, 어쨌든 지금은 시작과 희망을 말할 법한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천 년의 초입이 아니던가. 하지만 여기저기서 종말의 소문이 여전하다. 그것도 종래의 종말론들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신종 종말설들이 활개를 친다. 새로운 시대의 초입에 유행하는 신종 종말설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종말설, 종교, 과학

최근의 신종 종말설들 중에서 눈에 띠는 것은 단연 2012년 종말설이다. 몇 년 전 세계적으로 이 종말설이 이목을 끌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해 보였다. 지구촌 곳곳에서 재해와 재난의 소식이 들리면 많은 이들이 이 신종 종말론을 떠올렸고, 언론사마다 앞 다투어 이를 기사화하기에 바빴지만, 소식이 뜸해지면 종말설의 인기도 이내 사그라졌다. <2012>라는 블록버스터 재난영화가 흥행하기도 했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었다. TV 프로그램이 2012년 종말설을 다루기도 했지만,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오래 붙들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재해와 재난 소식 다시 들리면, 2012년 종말설을 비롯한 온갖 신종 종말설이 어김없이 다시 떠오른다.

최근의 종말설 유행 현상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과거의 종말설과는 성격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과거에 두드러졌던 그리스도교 진영의 시한부 종말설은 더 이상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해 보인다. 1999에서 2000으로 바뀌는 시각적으로도 드라마틱한 전환점이 지난 뒤로는, 특정한 시기를 주장하는 종말 이야기는 별로 들려오지 않는다. 일부 개신교 종파가 기존의 예상 종말 시기를 기민하게 수정하면서 세간의 2012년 종말설이 성서적으로도 옳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신종 종말설 유행에 편승한 것일 뿐 유행의 진원지는 아니다.

유행의 다른 진원지들도 미미하기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2012년을 언급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가 새로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있지만, 설령 그런 예언서가 있다 해도 사람들이 현재 시점에서 과거 문헌의 모호한 구절을 소급 해석하는 짓에 이미 신물이 났는지 노스트라다무스의 인기는 더 이상 예전 같지가 않다. 또 한 과학자가 주역의 64괘를 컴퓨터에 입력한 그래프를 토대로 2012년이라는 종말 시기를 확인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사람들은 동양 문화와 첨단 테크놀로지의 만남을 그리 흥미로워하는 것 같지가 않다.

반면에 고대 마야문명은 2012년 종말설의 진원지로서 인기가 꽤 높다. 마야인들이 사용하던 달력에는 시대의 마디가 표시되어 있고 그 마지막 마디를 환산하면 2012년 모월 모일이 된다는 이야기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마야문명 전문가들이 이런 해석이 날조와 오해일 뿐임을 확인해주었지만, 어쨌든 마야 달력은 2012년 종말설의 가장 강력한 진원지가 되었다.

그리스도교, 노스트라다무스, 주역, 그리고 마야 달력. 종류는 다르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이들이 모두 종교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종교란 신적 존재나 우주적 이법처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에게는 실재한다고 여겨지는 궁극적인 무엇에 대한 믿음과 관련된 현상이고, 이 점에서 신의 계시에 대한 통찰이든 우주적 주기를 읽어내는 혜안이든 종말의 때를 말하는 모든 담론은 종교적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오랫동안 종말설의 중심에 있던 그리스도교의 자리에 마야문명이 대신 들어선 점이랄까. 물론 이는 오늘날 유행하는 뉴에이지와 신-이교주의에서 비서구적인 고대문명이 인기를 누리는 대중문화 현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에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

종말설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그 종교적 상상에 과학적 증거들이 결부되고는 한다는 점이다. 예전에도 어느 정도 그랬지만, 최근의 신종 종말설에서는 이 점이 더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지구 자기장이 뒤바뀐다든지, 태양계 바깥에서 미지의 행성이 돌진해온다든지, 태양 활동의 주기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든지, 외계인의 우주선이 다가오고 있다든지 하는 온갖 견해가 2012년 종말의 증거로 제시된다. 고전적이거나 새로운 레퍼토리, 정상 과학과 유사 과학의 레퍼토리를 넘나드는 증거들의 목록이 늘어날수록 종말설에는 더욱 선명한 확실성의 후광이 드리워진다.

이 증거들 대부분은 ‘검증’이라는 과학적 기준과 무관하기에 그저 사이비과학일 뿐이고, 엄밀한 과학적 증거로 제시되는 것들도 대개는 확실한 사실이 아닌 추정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른바 과학적 증거들이 종교적 상상과 맞물리면서 신종 종말설의 재생산에 동원되고 있다. 종교적 종말설은 이른바 과학적 증거를 끌어와 그 정당성을 주장하고, 과학은 종교적 종말설들이 말하는 시기를 변수로 설정한 작업을 통해 예상했던 결론을 도출하고, 종교는 다시 과학을, 과학은 다시 종교를…. 특정한 신념과 가정, 그리고 조건 통제가 불충분한 정체불명의 과학이 서로 맞물리며 순환하는 무한 나선. 신종 종말설은 이 모든 것이 뒤섞이며 출현한 혼종적 산물이다.

종말의 구원에서 현실의 윤리로


과거의 종말설과 신종 종말설 사이에 여러 유사성과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 중에서 특히 두드러진 것은 사람들의 인식이다. 세기말과 천년기의 과도기를 지난 탓인지, 전통 종교들의 영향력이 줄어든 탓인지, 아무튼 일부 열성 신자를 제외하고는 종교적 종말설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크게 줄어들었다. 세상을 ‘우리’와 ‘저들’로 구분하는 이분법에 근거해 저들은 파멸하고 우리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이기적 구원관이 더 이상 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신종 종말설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 중에는 현세 탈출의 구원을 기다리기보다는 파국에 대비하며 생존을 도모하는 현세 지속적 실천을 도모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종말에 대한 인식이 수동형에서 능동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구원관은 전통적으로 ‘우리’와 ‘저들’을 구분하는 배타적 이분법, 선택된 소수임을 자부하는 이기심, 파멸할 세상을 벗어나는 현세 탈출의 열망, 그리고 신적 은총만을 기다리는 수동성의 교리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내에는 이와 다른 공존의 윤리, 공생의 전망, 현세적 사명, 구원의 능동성을 말하는 구원관도 나란히 존재해왔고, 오늘날 그 의의는 더욱 커지고 있다. 어쩌면 최근의 신종 종말설 유행 현상은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전통적인 종말의 구원관을 어떻게 새로운 현실적 실천의 윤리로 다듬어낼 것인지 성찰하도록 요구하는 숙제를 안겨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by 김윤성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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