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링컨, <신화 이론화하기> 옮긴이의 말 책꽂이

꼬박 4년 걸린 번역서가 드뎌 나왔습니다. 옮긴이의 말 올립니다.

브루스 링컨 지음, 김윤성최화선홍윤희 옮김,『신화 이론화하기: 서사, 이데올로기, 학문』(신화, 종교, 상징 총서 14), 이학사, 2009년 9월15일, 567쪽, 28,000원
Bruce Lincoln, Theorizing Myth: Narrative, Ideology, and Scholarship,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9, p.298, $28.00

신화 이론화하기 

차례

머리말
제1부 그리스인들의 뮈토스
   1장 뮈토스와 로고스의 옛 역사
   2장 호메로스에서 플라톤을 거쳐
제2부 신화의 근대사
   3장 르네상스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신화의 역사
   4장 존스 경의 기원 신화
   5장 니체의 “금발의 야수”
   6장 뒤메질의 게르만 전쟁 신
제3부 새로운 방향들
   7장 제2차 세계대전에서 현재까지(아마도 조금 더)
   8장 플루타르코스의 시빌라
   9장『가우트렉의 사가』와 선물 여우
   10장 황소의 탄식 다시 읽기
   11장 산스크리트 학자와 존스 경
후기 신화로서의 학문
주석
부록: 옮긴이의 용어 및 인명 설명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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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by 김윤성 최화선 홍윤희

   신화는 우리 시대의 두드러진 문화적 키워드 중 하나다. 서점에 가보면 낯익은 그리스-로마 신화집(대개 토마스 벌핀치 판본의 변형들이다)에서 각 나라별 신화집, 여러 나라의 신화들을 모아놓은 단행본과 전집류, 신화 용어집과 사전류, 그리고 작가, 저술가, 학자 등이 신화를 맛깔스레 각색하거나, 해설하거나, 문학, 영화, 미술 같은 문화 요소와 결부지어 논의한 책들에 이르기까지 신화와 관련된 다양한 저서와 번역서를 만날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일찍이 기호학자들, 신화학자들, 종교학자들은 『스타워즈』나 『슈퍼맨』 같은 영화가 신화의 구조를 빼닮았다고 하여 이를 현대의 새로운 신화라고 했는데, 그 뒤를 잇는『매트릭스』,『반지의 제왕』,『해리 포터』 같은 영화들은 구조 차원을 넘어 소재 면에서도 명백히 신화적인 요소들을 대거 차용하고 있다. 또 온라인 게임의 가상현실 속에 구축된 사이버 공간은 우리가 누비는 그 어떤 공간보다도 더욱 온갖 신화적 요소로 가득하다.
   단지 읽을거리, 볼거리, 놀거리 차원에서만 신화가 인기인 것은 아니다. 신화는 좋은 생각거리도 제공하고 있어서, 다양한 학문 방법을 동원해 신화를 분석하거나 신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이론적 성찰을 도모한 책들도 속속 저술되거나 번역되고 있다. 20세기 후반 이후 내내 세계적 인기를 누려온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과 종교학자 겸 신화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책은 거의 모두가 번역되었고(캠벨의『 신의 가면』 4부작,『신화의 힘』,『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신화의 이미지』 등과, 엘리아데의『세계종교사상사』 3부작,『성과 속』,『종교형태론』,『영원회귀의 신화』,『샤머니즘』,『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이미지와 상징』,『신화, 꿈, 신비』,『신화와 현실』 등), 까다롭고 방대하기로 유명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신화학』 4부작도 이미 두 권이나 번역되었으며, 나머지도 조만간 번역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신화 비판에 근거한 문화 비평 이론서의 고전인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의『신화론』은 번역본이 이미 두 종이나 나와 있으며, 엘리아데를 독창적으로 계승한 신화학자 웬디 도니거의『다른 사람들의 신화』가 번역되었고(그녀의 또 다른 주요 신화 연구서인『숨겨진 거미』도 번역되고 있는 중이다), 역사학자 폴 벤느의『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도 소개되어 있다. 향유되는 이야기 면에서나 이론적 논의 면에서나, 신화는 그야말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하겠다.

   그런데 어딘지 좀 허전하다. 신화 이론들을 조금만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캠벨과 엘리아데의 인기에 문제가 없지 않다는 사실을 금세 알게 된다. 캠벨에게는 텍스트 본래의 역사적 맥락과 상관없이 자신의 주관적 인상에만 근거해 무원칙적이고 무분별하게 온갖 신화를 비교해댄다는 비판이 가해지곤 한다. 엘리아데에게는 같은 비판에 덧붙여, 그가 학자라기보다는 성스러움 개념을 중심으로 새로운 영적 비전을 제시하려 하는 사제나 샤먼에 더 가까우며, 역사와 정치에 대한 그의 과도한 거부감은 젊은 시절 루마니아 파시스트 운동에 가담했던 이력에서 기인한다는 비판이 가해지곤 한다. 또 지금이야 이들만큼 인기는 없지만, 20세기 중반 세계 지성계를 휩쓸었고, 지금도 그 영향이 결코 만만치 않은 레비스트로스에 대해서는 그 몰역사성과 몰사회성, 그리고 언어적 환원주의 등에 대한 비판이 가해지곤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이런 비판적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신화 이론서는 제법 많아졌지만, 신화 이론들 자체에 대한 성찰과 비판, 그리고 이들과는 다른 시각의 대안적인 신화 분석과 이론은 여전히 접하기가 어렵다. 분명 신화의 유행은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고, 따라서 그 유행 안에 머물기보다는 그 현상을 비평적으로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화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기존의 이론과 방법에 대한 메타적인 검토가 절실하다. 이 점에서 연전에 엘리아데라는 인물과 그의 신화학과 종교학을 공감적 입장에서 전체적으로 조망한 저술과 번역서가 나온 일이나(정진홍,『M. 엘리아데, 신화와 종교』; 안진태,『엘리아데, 신화, 종교』; 더글라스 알렌,『엘리아데의 신화와 종교』), 엘리아데를 비롯해 카시러, 말리노프스키, 레비스트로스 같은 거장들의 신화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책이 번역된 일은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이반 스트렌스키,『20세기 신화 이론』).

   미국 시카고대학 종교학자 브루스 링컨의『신화 이론화하기』는 이렇게 신화 이론을 메타적으로 검토하려는 작업들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그는 (그가 극찬하는 스트렌스키와 마찬가지로) 기존 신화 이론가들 대부분에 대해 호의적이기보다는 확고한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그는 이 책에서 신화에 관한 이론을 구축하려는 기존의 시도들이 어떤 계보를 따라 펼쳐져 왔는지를 추적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신화 분석 방법들과는 사뭇 다른 방법으로 다양한 신화 텍스트를 직접 분석하고 있다. 그는 신화란 무엇인지를 딱히 정의하지 않는다. 신화라는 것 자체가 그 어떤 명확한 정의도 허락하지 않는, 극히 모호하고 복합적이며 유동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화 텍스트를 분석하고, 신화 이론을 해부하기 위해서는 모종의 작업적 정의가 필요한 법이다. 따라서 링컨은 잠정적으로 신화를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ideology in narrative form)’로 규정하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이런 식의 신화 이해에는 여러 가지 뿌리가 있다. 우선 그것은 프랑스 사회학과 인류학의 초석을 놓은 에밀 뒤르케임과 마르셀 모스가 ‘모든 신화는 근본적으로 분류 체계’라고 보았던 견해를 계승하고 있다. 인간 사회와 문화 속의 모든 담론과 실천이 그렇듯, 신화 역시 사물을 조직하고 분류하는 방식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링컨은 뒤르케임과 모스의 견해가 지닌 다소 안이한 중립성을 넘어서는 그 나름의 견해를 제시한다. 신화는 그냥 평범한 분류 체계가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위계를 조직하고 권력을 분배하는 이데올로기적 분류 체계라는 것이다. 여기서 링컨은 ‘허위의식으로서 이데올로기’에 관한 맑스의 생각을 보완한 안토니오 그람시의 ‘지배와 저항의 헤게모니적 토대로서 이데올로기’ 개념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신화를 ‘이차적 의미작용이 벌어지는 파롤화된 이데올로기’로 본 롤랑 바르트를 계승하고 있다. 링컨은 이런 입장을 그가 신화 분석의 주요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레비스트로스 식의 구조주의적 분석 방법에도 적용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가 일련의 대립적인 신화소들의 쌍을 구축하고 중재함으로써 인간 사고의 딜레마들을 해결하는 장치라고 보았는데, 링컨은 레비스트로스가 공시성에 치중한 나머지 통시성을 무시하고, 인간의 정신적 측면에만 관심을 가진 나머지 사회적 측면을 간과하며, 신화소들의 대립과 중재 방식을 찾아내는 데 골몰한 나머지 그 대립과 중재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위계화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놓친 점을 보완하고 있다.

   이 책의 각 장에서 다루는 내용은 링컨이 직접 머리말에 간단히 요약해놓고 있으므로, 여기서 굳이 반복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다만 링컨이 이 책에서 하고 있는 작업의 특성은 간단이나마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링컨은 이 책에서 그 성격이 사뭇 다르면서도 서로 밀접히 연관된 세 가지 작업을 하고 있다. 우선 그는 고대 그리스에서 뮈토스로부터 로고스로 담론의 헤게모니가 옮겨간 변화 과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분석한다. 링컨에 따르면, 우리가 이 주제에 관해 으레 짐작하곤 하는 것과 달리, 그 변화는 신화에서 이성으로, 비합리성에서 합리성으로 단번에 깔끔하게 옮겨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변화는 누구의 생각이 주목받고, 누구의 목소리가 권위를 부여받을 것인지를 둘러싼 담론적 권력 투쟁 속에서, 권력을 장악한 집단에 의해 뮈토스와 로고스의 의미가 재편되고 위상이 뒤바뀐 역동적인 과정의 산물이다. 이러한 논의는 뮈토스에 대한 로고스의 승리라는 생각이 그 자체로 하나의 (허위의식으로서) 신화에 불과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효과를 낳고 있다(1장과 2장).
   다음으로 링컨은 근대와 현대 신화 연구의 흐름을 세밀히 추적하면서 신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특정한 신화 이론을 구축하려던 시도들에서 어떤 이데올로기들이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해부한다. 우선 그는 근대 유럽에서 낭만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하면서 신화가 어떻게 민족 정체성의 뿌리로 새로운 관심을 끌게 되었고, 이렇게 재발견된 (또는 날조된) 신화가 어떻게 자민족 중심주의와 인종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제공했는지를 규명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림 형제의 민담 연구나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를 비롯한 다양한 신화 이론과 담론 속에 내재한 때로 은밀하고 때로 노골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하나하나 밝혀낸다(3장). 그리고 이 작업의 연장선에서 좀 더 구체적인 사례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작에 아리아 민족주의의 원형이 어떻게 절묘하게 스며들어 있었는지(4장), 윌리엄 존스의 인도 연구에서 아리아 민족주의의 토대로서 본연의 인도-유럽에 대한 환상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고 있었는지(5장), 그리고 조르주 뒤메질의 신화 연구에서 우파 민족주의를 비롯한 온갖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었는지(6장)를 밝혀낸다. 이어서 링컨은 좀 더 현대로 시선을 옮겨 20세기 중후반 신화 연구 진영의 두 거장, 특히 뒤메질과 교우를 나누며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엘리아데와 레비스트로스의 신화 이론을 검토한다. 그는 엘리아데의 제자였지만 스승에 대한 그의 평가는 매우 냉담하고 소략하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스승으로서는 존경하지만, 신화 연구 이론과 방법에 관한 한 그에게서는 배울 점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반면 그는 레비스트로스에게는 꽤 관대하다. 비록 레비스트로스 역시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신화라는 서사 속의 이데올로기를 해부하는 데서는 그의 구조주의적 방법을 (맑스로 보완해서) 수정해 사용할만한 유용성이 있다는 것이다(7장 앞부분).
   이상이 신화 이론의 역사적 궤적을 추적하는, 이론에 관한 메타-이론적 작업이었다면, 세 번째 작업은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로서 신화의 구체적 사례들을 실제로 분석하는 일이다. 이는 그야말로 시대와 장소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펼쳐진다. 고대 아일랜드 서사시에서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어떤 식으로 성적 차이를 자연화하면서 젠더 규범을 요지부동의 원칙으로 재확립하는지를 밝혀내고,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의 텍스트들에서는 신흥 엘리트인 철학자 집단이 어떻게 자신들을 정점에 놓는 식으로 사회적 위계 담론을 재편하려 했는지를 밝혀낸다(7장 후반부). 로마 시대 그리스인 저술가들의 텍스트들에서는 상이한 종교적 집단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에 따라 다양한 점술 체계들의 위계를 서로 상이하게 재구성하려 했는지를 밝혀내고(8장), 고대 북유럽 서사시에서는 해상무역에 근거한 상업자본주의의 출현이 기존의 폐쇄적이고 자족적인 경제 체제와 어떤 식으로 대비되며 칭송되고 있었는지를 밝혀내며(9장), 고대 이란의 조로아스터교 경전에서는 인간을 만물의 지배자로 설정하려는 목소리와 이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대비시킴으로써 이 고대적 텍스트가 어떤 식으로 피억압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었는지를 밝혀낸다(10장). 또 인도 연구의 대가였던 윌리엄 존스와 관련해서는, 그가 인도의 고대 서사시를 활용해 어떤 식으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 했고, 이와 대조적으로 동일한 서사시를 활용해 인도인들이 존스의 오만과 영국의 지배에 어떤 식으로 흠집을 내려 했는지를 분석한다(11장).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링컨은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로서 신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보류되는 한 가지 영역을 설정한다. 그것은 바로 학문이다. 물론 학문하는 행위 자체도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신화일 수 있고, 엉터리 각주에서 보이듯이 온갖 부정직과 기만적 이데올로기로 뒤범벅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정직하고 정확하게 각주를 달려는 노력이 있고, 논지와 자료를 서로 점검하고 교정해줄 지적 공동체가 있는 한, 학문은 이데올로기의 단순한 매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을 여지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 실증으로 그는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부정직한 학문적 작업들의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들을 대비하고, 단순한 향유나 재구성의 차원을 넘어선 비판적 학문으로서 신화 연구의 가능성과 전망을 모색한다(후기).

   링컨의 논의가 주로 서구 신화들과 약간의 비서구 신화들, 그리고 전적으로 서구 학계의 신화 이론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그의 논의는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서구 근대성의 영향 속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로고스와 이성의 승리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강고하다. 여기서 뮈토스와 로고스의 복잡한 함의들과 그 관계 방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링컨의 작업은 우리 안의 이 환상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해준다. 또 민족주의 등의 온갖 이데올로기에 휘둘리던 근대 신화학의 계보를 추적하는 그의 작업은 근대화와 식민화의 격동 속에서 무지와 미신의 산물로서 신화에 대한 비판적 담론과 나란히, 민족 정체성의 진정한 뿌리로서 신화, 특히 단군 신화를 재발견하고 발명하려던 민족주의적 담론이 지배해온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진지하게 되살피게 해준다. 서양에 대한 열등감과 반감의 미묘한 공존, 그리고 결혼 이민자로서 또 이주 노동자로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된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한 멸시와 우월감 등에서 드러나는 우리 식의 인종주의에는 단일민족의 허상을 좇는 편협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깔려있고, 그 바탕에는 바로 민족의 뿌리로 상정된 단군 신화가 있다. 링컨은 우리 안의 인종주의적 그림자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일, 즉 신화와 민족주의가 복잡하게 상호작용을 해온 역사적 과정을 복원하고 비판적으로 재평가하는 데 유용한 작업 모델을 제공해준다.
   무엇보다도 링컨은 신화란 자고로 ‘성스러운 이야기’라거나 ‘우주와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가 담긴 이야기’라는 식의 낭만주의적 신화 이해가 지배적인 가운데, 신화와 신화 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보다는 신화의 단순한 향유, 그리고 신화 이론의 단편적인 수용과 적용에만 그치고 있는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낭만주의적 신화 이해도 나름의 쓸모는 있다. 상징과 의미라는, 쉽게 떨어낼 수 없는 주제에 관해서는 낭만주의자들에게서도 일면 귀 기울여 들을만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낭만주의적 시각이 마치 신화를 읽는 유일한 독법인 양 오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링컨은 이 오해를 확실히 교정해준다. 그는 낭만주의가 아닌 계몽주의의 노선을 따라 좀 더 진솔하고 비판적으로 신화 텍스트와 그 컨텍스트를 분석하는 대안적 방법을 제공해준다. 그의 방법은 효과적이고 매력적이다. 결국 링컨을 통해 우리는, 신화가 대대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현실에 그저 휩쓸리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서 신화 자체를, 또 신화에 관한 담론과 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하나의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여름이었다. 처음엔 김윤성이 용감하게 혼자서 번역을 시작했지만 시대와 지역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그 방대함 앞에서 쩔쩔매던 중이었고, 이듬해에 최화선이 참여하면서부터 비로소 번역 작업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각자 미국에 정착하거나 국내 대학의 전임이 되면서 번역이 계속 지연되다가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2007년 가을 홍윤희가 새로 합류하면서 다시 번역을 재개하여 마침내 완성할 수 있었다. 번역은 우리 세 사람이 각자의 전공 분야나 관심사에 따라, 또 분량을 고려하여 분담했다. 1장, 2장, 4장, 8장은 최화선이, 3장, 5장, 6장은 홍윤희가, 7장, 9장, 10장, 11장, 그리고 머리말과 후기는 김윤성이 초역을 했다. 번역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 덕을 톡톡히 봤다. 국내외에 흩어져 있었기에 한 자리에 모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 복안으로 우리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번역 파일들을 올려 함께 읽고, 책의 내용, 번역 방식, 용어와 개념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책 전체는 우리 세 사람의 공동 작업의 산물이며, 번역의 오류가 있다면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이다.
   번역을 완성하고 책으로 나오기까지는 이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고, 교정을 보아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이 책을 처음으로 함께 읽었던 서울대 종교학과 대학원 선후배들과 초역을 살펴준 지금의 동학들, 그리고 지난 학기에 원서와 초역을 함께 읽으며 이 책으로 세미나를 했던 지금의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대학원 동학들께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출판계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번역을 포기하지 않고 완성하기까지 오래 기다려주고, 원서와 초역을 일일이 대조하며 더 나은 번역이 되게끔 조언을 해주고, 마침내 이렇게 책이 완성되어 나오기까지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아준 도서출판 이학사 측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09년 8월
   옮긴이들  


덧글

  • 이환섭 2009/09/09 01:13 # 삭제 답글

    윤성이형! 불러 보기만 해도 그리운 이름이네요. 저는 미국 생활이 만 10년째입니다. 아시다시피 95학번 손지랑 결혼해서 이제 애가 둘입니다. 종교학에 배신 때리고 생활동선에 들어간 것도 어느새 8년 이네요.

    한 1년전인가 인터넷 매체에 다른 학자 2명이랑 논쟁하는 글을 읽어봤어요. 종교학자로서의 형의 고뇌가 느껴지더군요. 과학과 기독교라... 여하튼 멀리서도 형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위의 책은 종교학도로서 제가 마지막 산 책입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지금은 집안 어디 박스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른답니다.

    저는 지금 사회복지사예요. 노인들을 돕는 일을 하지요. 심신이 좀 피곤한 면은 있어도 보람은 있답니다. 저희는 Washington DC 교외에 살고 있어요. 이곳에 올 일이 있으시면 꼭 연락 주세요. 건강하세요. 환섭 드림.
  • 제이쌍스 2009/09/09 01:16 # 답글

    모처럼 들른 방가 블로그에서 그 흔적보고 내 흔적 남겼더니, 금세 찾아오셨네. ^^ 프레시안 글을 말하는군. 그 편지글들 모아서 책 냈지. <<종교전쟁>>이라고... 책은 1만부 팔려가는데, 그 책으로 교재 삼으려던 과학과 종교 수업은 금요일 늦은 오후 시간이라 폐강되었다는... T.T ... 근데 고뇌보다는 신학자랑 무신론자 사이에서 즐기듯 쓰려 한건데, 아직도 나의 즐기기가 다른 눈엔 고뇌로 보일 수도 있겠군... 아님 환섭이 종교학도의 고뇌를 늘 가슴 한켠에 품고 있어서 그리 보이는 것일라나? 암튼, 정말 반갑고, 긴 얘기는 내 멜로 다시 쓰리다. see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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